[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SW) 기업 중 하나다. 아래아한글을 중심으로 한 오피스 SW ‘한컴오피스’를 제공한다. 문서 작업을 위한 필수 SW인 만큼, 그 인지도는 무척 높다.

다만 일부에서는 한컴을 두고 ‘과거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2000년대 초반 부침을 겪은 뒤 기사회생에 성공했으나 공공 시장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인수합병(M&A)을 통해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성공을 거뒀음에도 비판은 줄지 않았다.

그랬던 한컴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김연수 대표 체제하에 ‘뉴한컴’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지난 28일 출시한 ‘한컴독스’가 대표적이다. 패키지 SW로 판매되던 기존 방식에서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형 서비스로 전환에 나섰다. 비영리 목적의 일반 사용자에게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며 접근성도 높였다.

◆문어발 확장? No··· 오피스 구심점 삼아 전략적 접근

“한컴은 너무 무차별적이게 사업을 확장한다. 구심점이 없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줄곧 지적돼 온 바다. 한컴MDS와 한컴라이프케어의 인수로 사업 규모를 키우며 ‘한컴그룹’이 됐지만 정작 계열사 간 시너지는 없었다. 각 사업부문이 한컴이라는 브랜드만 유지한 채 각자도생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한컴의 가장 큰 변화는 선택과 집중이다. 한컴은 최근 한컴MDS와 함께 계열사 다수를 매각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신사업이 아닌, 한컴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에 기반한 사업 확장으로 노선을 틀었다.

한컴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작년 8월부터 대표직을 역임하고 있는 김연수 대표, 그리고 김병기 한컴 전략기획본부장이다. 전략기획본부는 지난 4월 신설된 본부다. 사업에 대한 전략과 방향성 제시, 구체적인 서비스 기획 등을 맡은 곳이다.

김 본부장은 <디지털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컴에 입사한 지 1년 정도 됐다. 와 보니 한컴은 굉장히 개발자 중심적인 기업이더라. 개발과 영업은 잘하지만 전반적인 전략이나 기획 등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거기서 전략기획본부가 개발과 사업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고 이를 이끌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1979년생인 김 본부장은 한컴에서 변화를 위해 영입해온 외부 인재다. SK텔레콤에 입사, SK그룹에서 10여년간 여러 업무를 수행한 그는 최근까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요기요’를 서비스하는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에서 근무하다가 한컴에 합류했다.

그는 “여전히 IT 업계는 개발자 구인난이다. 경력 있는 개발자가 굉장히 귀한데, 한컴에는 오랜 경력을 가진 개발자들이 수두룩하다. 인적 자원의 역량은 넘치는데 이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며 “내가, 그리고 한컴이 하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들 개발자들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강점을 극대화하는 사업 아이템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컴 김병기 전략기획본부장


◆“한컴오피스를 해체하라”, API/SDK 사업 진출

한컴이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것 중 하나가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및 소프트웨어 개발키트(SDK) 사업이다.

API/SDK는 비개발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인데, 쉽게 풀이하자면 한컴오피스라는 덩어리 SW를 구성하는 갖가지 기능을 쪼개서 모듈화한 것이다.

가령 포털사이트에서 날씨 정보를 볼 수 있는 것도 API를 활용한 것인데, 포털사가 기상청이 보유한 날씨 데이터를 API 형태로 끌어와 보여주는 것이다. SDK도 SW 개발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묶어서 제공하는 것인데, 개념적으로 API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API/SDK 사업’이라고만 하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기에 ‘한컴오피스’가 붙는다면 설명이 쉽다. 한컴오피스는 텍스트 입력, 표·차트 생성, 이미지·동영상 삽입, 전자서명, 광학문자인식(OCR) 등 숱한 기능들이 모여서 구성된 SW다. 이런 기능 중 일부를 잘라내 필요로 하는 기업에게 제공하는 B2B 비즈니스를 펼친다는 전략이다. 한컴오피스라는 완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에서 기술을 판매하는 기업으로의 변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비유하자면, 한컴오피스는 비빔밥이다. 밥, 콩나물, 고추장, 호박 등 여러 재료들이 비빔밥을 구성하듯 여러 개별 기능들이 모여서 한컴오피스를 만든다. 그동안은 비빔밥인 상태로만 제품을 판매해왔는데 앞으로는 재료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단번에 모든 기능을 API/SDK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는 “이미 비벼져 있는 비빔밥에서 호박만, 콩나물만 따로 떼내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고객들이 어떤 기능들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 우선순위를 지정해서 차근차근 사업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덩어리로 구성된 한컴오피스에서 무엇을, 어느만큼 떼낼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단계다.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삼성SDS와의 협력이다. 삼성SDS는 자사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솔루션 ‘브리티 RPA’에 한컴이 제공하는 API/SDK를 활용할 예정이다. 아래아한글을 비롯해 OCR과 자연어처리(NLP) 등 기능이 유력할 것으로 점쳐진다.

◆오피스도 변화, 구독 서비스로 전환··· 비영리 사용자는 무료로 이용 가능

한컴은 그간 2~3년 주기로 새로운 버전의 한컴오피스를 출시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와 같은 패키지 SW는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만큼 즉각적인 기능 업데이트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에 한컴은 지난 27일 패키지 SW 판매를 종료하고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는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했다.

한컴의 탈(脫) 패키지 SW와 한컴독스로의 전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공공 사업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기업 및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강화한다는 것이 가장 눈여겨 볼만하다.

김 본부장은 “공공 시장은 제한적이다. 꾸준히 성장을 해왔지만 공무원 수가 갑자기 늘지 않는 이상 뚜렷한 성장은 힘들다”며 “또 설치형 제품의 경우 고객이 어떤 기능을 활용하는지, 어떤 데서 아쉬움을 느끼는지 등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 서비스 환경에서는 보다 쉽게 사용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능을 개선하는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이 가능해져 제품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구독형 서비스로의 전환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해 어도비 등 글로벌 SW 기업들 모두 구독 서비스로 전환한 지 오래다. 일찌감치 구독 서비스로 전환한 기업들 덕에 시장은 어느 정도 구독 서비스에 익숙해진 상태라는 것은 한컴에겐 다행이다.

한컴은 비영리 목적의 사용자들에게는 무료로 한컴독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웹과 모바일 앱에서 로그인만 하면 무료로 문서편집이 가능하다. 문서 열람을 위해 뷰어 프로그램을 써야만 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만한 부분이다. 이로 인해 ‘일반 사용자에게 비싼 값을 받는다’는 비판도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버스·한컴타자연습 리뉴얼도 연내 베타 서비스 예정

연내에 ‘메타버스 협업도구’도 선보일 예정이다. 메타버스 협업도구에는 한컴오피스를 비롯해 기존 한컴이 보유한 기술들이 탑재된다. 그는 “후발주자로서 메타버스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차별화할 수 있는 기능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내놓는 제품인 만큼 기대하셔도 좋다”고 전했다.

반가운 이름도 등장했다. ‘한컴타자연습’이다.

김 본부장은 “요즘은 모르겠지만, 30~40대 사람들이라면 한컴타자연습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경쟁력이 있는 솔루션이지만 한 번도 매출을 거둔 적이 없다. 최근 오징어게임 등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한컴타자연습을 보다 게임화하고 손봐서 해외 시장에 제공하려 한다”고 밝혔다. 오는 12월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점진적인 변화를 강조했다. “신사업 전반은 한컴오피스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한컴오피스는 한컴의 캐시카우이자 근간이며,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한컴오피스에 요구되는 기술을 계속해서 고도화할 것이다. 그간 한컴이 구심점 없이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는 비판을 받았데, 이번에 추진되는 변화는 한컴오피스가 구심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컴을 지휘하고 있는 김연수 대표의 의지는 확고하다. 김 대표는 지난 6일 발송한 2022년 상반기 주주서한을 통해 “기존의 한컴을 뛰어넘는 변화를 이루겠다”며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과감하게 개편해 효율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컴의 본격적인 변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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