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우리나라가 D램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면서부터 메모리가 아닌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경쟁력 강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같은 시스템온칩(SoC)과 전력반도체(PMIC), CMOS 이미지센서(CIS), 모뎀칩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위탁생산(파운드리)도 같은 맥락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는 짧아도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에 올라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미세공정 한계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업계가 발전한 원동력은 회로를 더 작게 그려 웨이퍼 한 장에서 뽑아낼 수 있는 칩의 수를 계속해서 늘려온 덕분이다. 성능은 높아지는데 원가가 비슷하거나 적게 들어가면 그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패키징과 같은 후공정은 찬밥이었다. 전공정이 반도체 역사에서 화려한 실적을 거둬왔고 패키징은 만들어진 칩을 포장하고 인쇄회로기판(PCB)과 연결하기 위한 방법론에 더 가까웠다. 어디까지 반도체의 성능을 결정하는 건 트랜지스터를 얼마나 더 많이 집적할 수 있느냐가 달려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 공식은 유효하지만 미세공정, 바꿔 말하면 회로를 지금보다 미세하게 그리기가 어려워지면서 패키징으로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것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패키징을 잘해서 돈을 번 경우가 있다. 대만 TSMC 이야기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GF)와 함께 톱3 파운드리로 잘 알려져 있다. 애플 A시리즈 AP 수주를 두고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최신 패키징 기술을 이용해 결국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그러니 삼성전자가 삼성전기와 함께 부랴부랴 패키징 연구개발(R&D)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 무리는 아니다.

삼성전자도 패키징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TSMC가 썼던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an Out Wafer Level Package, FOWLP)’와 관련한 인력도 배치했지만 2012년을 전후로 팀을 해체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팬아웃은 시장규모나 전망에 있어서 그리 유망한 기술은 아니었다. 원천기술에 대한 부담, 전공정과의 기반(인력, R&D 규모 등)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TSMC는 조금 달랐다. 전공정과 후공정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어서 다른 파운드리와 차별화를 뒀다. 이는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품질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손해를 보더라도 칩을 만들었다.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업체인 자일링스가 그래서 TSMC와 협력을 끊기가 어렵다. FPGA는 종류에 따라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패키징으로 성능을 높여주고 수율이 안 나오면 손해를 감수했다. 쉽게 말해 TSMC는 가야할 길이라고 판단하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TSMC의 갖은 후공정 노력은 애플 AP 수주, 미세공정 한계를 극복한 참신한 기술로 포장되어 경쟁사를 압박하고 있다.

전공정이냐 후공정이냐를 논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그동안 후공정이 주목받지 못했고 경쟁사가 길을 잘 터서 다시금 투자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당장 돈이 되느냐, 전공정과의 기반 차이를 극복할 만큼 유망하느냐를 따지기보다 길이 막히면 돌아갈 수 있는 유연성에 대한 부분이 아쉽다.

한 가지 식품만 먹는 원푸드 다이어트가 인기다. 하지만 균형 잡힌 식단이 더 낫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비메모리 반도체를 못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예전만 못하다. 이런 단계까지 올라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후공정도 마찬가지다. 또 후발주자라는 위치에 섰지만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빠른 시간 안에 선두를 따라잡기를 기대한다. 이후에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과감하게 개척하는 수준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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