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독일 베를린 전자매장인 ‘자툰’에서 벌어진 세탁기 파손 사건을 두고 소란스러운 모습이다. 이미 화살은 떠났고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터이니 차분히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이것보다는 ‘왜’ HA사업본부장 조성진 사장이 직접 매장에 가서 삼성전자 세탁기를 살펴봤느냐가 더 궁금하다. 회사에 돈이 없고 연구실에 제품이 갖춰지지 않기에는 이 분야 1위인 LG전자 입장을 봤을 때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적어도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이 많았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조 사장은 ‘Mr. 세탁기’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연구원 출신에다가 세탁기에 관한한 그 누구보다 깊은 지식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가 세탁기설계실에서 부장을 하고 있을 때 개발된 ‘통돌이’ 세탁기, 클러치를 없앤 ‘터보드럼’ 세탁기는 1997년과 1999년 IR52 장영실상을 받았다. 이전에 같은 상을 받은 제품이 1992년 ‘리듬 여유만만’ 세탁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5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특히 통돌이 세탁기는 지금도 전자동세탁기, 정확히 말해 바닥판이 회전하는 와권식 세탁기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특정 업체의 브랜드가 고유명사로 불리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샤프’, 국내에서는 ‘봉고’처럼 말이다.

라이벌인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기술개발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장영실상을 받은 제품도 2004년 ‘은나노 항균’ 세탁기부터였다. 첫 수상 시기로 봤을 때 LG전자와 무려 12년 차이가 난다. 다만 이후부터는 기술은 물론 시장점유율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최대 시장인 미국의 드럼세탁기 시장점유율은 2011년 기준(출처 스티븐슨컴퍼니) LG전자가 20.7%, 삼성전자가 17.4%로 수위를 다투고 있다. 2008년만 하더라도 이 시장에서 LG전자는 25%, 삼성전자는 5% 점유율에 불과했다.

이후 트렌드를 살펴보더라도 삼성전자가 앞서 나가는 모양새다. 여러 군데서 물줄기를 내뿜어 세탁력과 전력소비량을 줄인 ‘버블샷’, 물 없이 건조하는 ‘무수건조’, 유럽 공략용 프리미엄 모델 ‘WW9000’을 내세우며 기선 제압에 나선 것. 이후 LG전자도 ‘터보샷’, ‘에코 하이브리드’ 등을 내놨지만 경쟁사를 뒤따라간다는(물론 선행개발은 먼저 해뒀다고 주장) 이미지가 강했다.

조 사장은 2012년 11월 HA사업본부장으로 발령된 이후 냉장고와 진공청소기, 정수기 등 다른 생활가전 제품도 돌봐야 했다. 세탁기만 연구하던 시절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기간 동안 벌어진 삼성전자의 추격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삼성전자는 다른 생활가전보다 세탁기에서 유독 LG전자에 뒤처졌다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털 블루’ 세탁기는 이런 작업의 결정체다.

돌아와서 조 사장이 독일 전자매장에서 시장 조사에 나선 것도 삼성전자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40년 가까이 세탁기 한우물만 파온 입장에서 직접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부하 임직원에게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작년 12월에는 HA연구소장까지 겸임했다. 에어컨과 몇몇 에어솔루션을 제외한 LG전자의 모든 생활가전 개발이 그의 두 손에 맡겨졌으니 책임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번 사건은 순수함에서 빚어진 해프닝일 수 있다. 하지만 순수하다고 모든 가치가 ‘선(善)’은 아니다. 어쨌든 삼성전자는 뜻밖의 기회를 잡았고 그냥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적자생존, 무한경쟁으로 도배된 이 세상의 법칙이다.

조 사장이 이런 외풍을 견뎌내느냐 여부는 이제까지 쌓아온 경력과 큰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심리적 고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세탁기사업부장인 부사장으로 올라섰을 때 “승진해서 기쁜 것보다 세탁기 부문에서 계속 일할 수 있어서 안도했다”는 그의 말처럼 세탁기에만 몰두했던 순수함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것만큼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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