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스페인)=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2030년 6G 시대를 앞두고 국가별 전략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미국은 인공지능(AI) 기반 무선접속망(AI-RAN)을 중심으로 기술 동맹 구축에 집중하는 한편, 중국은 독자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은 네트워크 공급망과 플랫폼 질서를 재편하려는 규제 전략을 내세웠다.
지난 2일(현지시각)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6’ 전시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나타났다. 단순 네트워크 기술 경쟁을 넘어 생태계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기술 전시 대신 협력”… 美 AI-RAN 중심 글로벌 연합 구축
이번 MWC에서 AT&T와 버라이즌, T모바일 등 미국 주요 통신사는 대규모 기술 전시 대신 비즈니스 미팅과 파트너십 중심 공간을 운영하는 모습이었다. 전통적으로 글로벌 통신 전시회에서 화려한 기술 데모보다는 사업 협력과 생태계 논의에 무게를 두는 전략을 유지해왔지만, 이번 행사에선 이러한 흐름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이는 대형 기술 데모나 체험형 전시를 적극적으로 운영한 일부 글로벌 통신사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전략의 배경에는 AI-RAN 중심 생태계 구축 움직임이 있다. AI-RAN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무선접속망(RAN)을 운영하는 기술로, 기지국이 하나의 소형 AI 데이터센터처럼 동작하며 단일 인프라에서 RAN 처리와 AI 워크로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구조다.
업계에선 미국 통신사들이 기술 전시보다 파트너십 논의를 통해 AI-RAN 생태계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네이티브 6G 연합’이다.
6G가 자율주행 차량과 로봇, 센서 등을 연결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AI를 네트워크 전반에 적용하는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연합에는 미국 T모비일을 비롯해 SK텔레콤, 독일 도이치텔레콤, 일본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주요 통신사가 참여했다. 시스코와 에릭슨, 노키아 등 네트워크 장비사도 합류했다.
퀄컴을 중심으로 한 6G 연합도 등장했다. 이들은 AI 기반 6G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기기와 데이터 서비스, 항공 및 지상 교통 관리 시스템 등 차세대 서비스 연구개발을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퀄컴은 연합과 함께 2029년까지 6G 상용 시스템 구현을 목표로 하는 기술 로드맵도 제시했다.
◆ 독자적 생태계 구축하는 中…GSMA와 ‘AI 혁신 이니셔티브’ 출범
반면 중국 진영은 독자적 AI 네트워크 생태계 구축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을 중심으로 AI-RAN 논의가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글로벌 표준과 생태계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구도 속에서 나온 행보로도 해석된다.
이 같은 흐름은 전시장에서도 확인됐다. GSMA는 MWC26 바르셀로나에서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과 함께 ‘모바일 AI 혁신 이니셔티브(Mobile AI Innovation Initiative)’를 공식 출범했다. AI 확산에 필요한 네트워크 인프라 고도화와 산업 적용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시한 보 첸 GSMA 그레이터차이나 총괄은 “AI가 빠르게 실사용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확장성과 저지연·보안성을 갖춘 연결 인프라가 필수적”이라며 “모바일 네트워크는 차세대 AI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과 유럽의 통신장비 배제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화웨이의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속에서도 화웨이가 자체 AI 반도체 기반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었다.
이번 MWC에서 화웨이는 대규모 AI 연산을 위한 데이터센터 장비 ‘아틀라스 950 슈퍼포드(Atlas 950 SuperPod)’를 전시했다.
이 장비는 화웨이가 공개한 AI 컴퓨팅 플랫폼으로, 자사의 최신 AI 칩 ‘어센드(Ascend) 950 DT’ 8192개를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어 학습과 추론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랙스케일(rack-scale) 시스템이다.
◆유럽, 규제 기반 질서 재편 움직인…DNA 법안 주목
지난 1월 디지털 네트워크법(DNA)이 발의된 가운데 유럽 진영에선 규제 중심 접근이 두드러지는 모습이었다.
DNA는 EU 회원국별로 상이했던 네트워크 규제를 단일 체계로 정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의 규제 중심 틀을 유지하면서도 통신사의 투자 여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 무게중심을 조정한 것이 특징이다.
다만 업계에선 이를 두고 장비 영역에서는 중국을, 플랫폼 영역에서는 미국을 겨냥한 정책적 접근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단순한 내부 규제 정비를 넘어 글로벌 통신 공급망과 플랫폼 질서를 재편하려는 정책이라는 평가다.
법안에는 중국 통신 장비 업체를 ‘고위험 공급업체(high-risk vendor)’로 분류하고, 이들과 협력할 경우 핵심 주파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가 포함됐다. 보안 리스크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유럽 시장 내 중국 장비 영향력을 축소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또 통신사와 글로벌 빅테크 간 망 이용대가 분쟁에 대해 국가 규제기관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조정 회의(conciliatory meeting)’ 제도 도입도 포함됐다. 이는 그동안 사업자 간 자율 협상 영역에 머물렀던 망 이용대가 문제를 공적 규제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처럼 2030년 6세대 이동통신(6G)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네트워크 기술 경쟁을 넘어 AI·데이터·플랫폼을 포함한 생태계 주도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국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번 MWC26를 통해 ‘AI 네트워크 얼라이언스(AINA)’를 출범시켰다. AINA는 과기정통부가 2023년 출범시킨 오픈랜 인더스트리 얼라이언스(ORIA)를 AI 시대에 맞게 재정비한 민관 협의체다. 대표 의장사는 KT가 맡았으며, 서창석 KT 네트워크부문장이 초대 의장으로 조직을 이끈다.
출범식에선 과기정통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LG전자 AI RAN 장비의 미국 수출 성과를 공유했다. 국산 장비의 해외 진출 사례를 통해 기술 상용화 가능성과 생태계 확장 잠재력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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