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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시장 자율’ 뒤에 숨은 방미통위

[사진=챗GPT 이미지생성 모델이 제작한 그림]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문제입니다.”

최근 콘텐츠 사용료(프로그램 사용료) 갈등을 두고 방송 사업자들이 중재를 요청하자 한 부처의 고위 공무원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관 부처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공식 메시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전제가 틀렸다. 한국 방송시장은 ‘자율’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사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적이다. 정부 규제 탓이다.

방송 요금은 20여 년 전 수준에 묶여 있고, 모든 상품은 차별 없이 200여 개 채널을 포함하도록 설계돼 있다. 요금을 올리거나 채널을 조정해 이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사업자의 몫이다. 그러나 정작 사업자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다.

방송채널사업자(PP)는 블랙아웃(송출 중단)을 감수하기 어렵고, 유료방송 사업자 역시 콘텐츠 사용료 인상을 요금에 반영하거나 상품 구조를 바꾸기 힘든 구조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채널을 제외할 수도 없고, 수년째 동일한 방송을 트는 채널에도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면 이를 과연 ‘시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콘텐츠 사용료를 단순히 ‘민간 계약’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해외 역시 가격을 정부가 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협상이 작동하도록 최소한의 규칙은 마련돼 있다. 사용료 산정 기준과 협상 절차를 두고,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중재 장치도 작동한다. 협상력이 한쪽으로 쏠리기 쉬운 산업 구조를 고려한 장치다.

국내 콘텐츠 사용료 배분 구조는 기형적이다. 케이블TV(SO)는 매출의 약 90%를 콘텐츠 대가로 지급하는 반면 IPTV는 30% 수준에 그친다. 플랫폼 경쟁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9대1과 3대7의 격차를 합리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일반 PP의 사용료는 줄어드는 반면 지상파와 종편의 몫은 오히려 늘고 있다. 그럼에도 콘텐츠 사용료의 적정 배분 구조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논의는 사실상 멈춰 있다.

광고 매출이 줄고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한 플랫폼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 플랫폼이 콘텐츠 구매를 줄이자 대형 제작사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이제는 누가 살아남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퇴로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올해는 한 유료방송사의 폐업 가능성도 거론된다. 물론 경쟁력 없는 사업자의 퇴출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퇴로는 시장 전체를 흔든다. 남아 있는 사업자의 제작·투자 재원이 동시에 약화되는 구조다. 정부는 이 연쇄 충격에 대비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정부는 넷플릭스가 투자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두고 K-콘텐츠의 경쟁력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이는 영화 ‘대부’를 두고 이탈리아가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켜보겠다”는 말이 반복되는 사이 시장은 균형을 찾지 못한 채 소모적 갈등만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 생태계의 기반은 약해지고 있다. 시장 자율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동할 조건을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관망이 아니라 최소한의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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