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日보다 무서운 中 수출규제 온다

김도현 2021.12.28 09:51:00

- 자승자박이었던 日 수출규제…中은 배터리 경쟁국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2019년 7월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한국 업체에 반도체 핵심 소재 공급을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일본이 꽉 잡은 시장인 만큼 국내 업계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약 2년 반이 지난 현재 일본 관련 이슈는 사실상 해소된 상태다.

정부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이 기민하게 대응한 것도 유효했으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스텔라케미파 스미토모화학 등 일본 회사의 메인 고객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업체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국 기업 발목을 잡았다는 현지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업체들은 고객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이어 한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했다.

최근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배터리 산업도 공급망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에는 중국이다. 중국은 배터리 필수 광물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현지에서 채굴하는 물량은 물론 2010년 전후로 남미와 아프리카 광산을 사들이면서 주도권을 쥔 상태다. 중국은 광물에 이어 배터리 4대 소재 분야에서도 압도적이다. 작년 기준으로 ▲양극재 57.8% ▲음극재 66.4% ▲분리막 54.6% ▲전해질 71.7% 등을 차지한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국의 ‘가격 갑질’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전구체 원료인 리튬 가격은 지난 한 달 사이 24.3% 오르며 연일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다. 작년 말(약 44위안)과 비교하면 올해 말(약 230위안) 5배 이상 증가했다. 니켈 코발트 등도 같은 흐름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가격이 폭등한 배터리 소재는 과거 가치가 떨어지는 광물로 치부했다. 하지만 양극재 등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중국이 선제적으로 시장을 다져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는 일본 수출규제보다 후폭풍이 클 전망이다. 가장 큰 차이는 중국이 배터리 경쟁국이라는 지점이다. 자국 반도체 제조사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작은 일본과 달리 중국은 대형 배터리 생산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1위 CATL을 비롯해 BYD CALB 궈쉬안 등이 ‘글로벌 톱10’에 든다. CATL과 BYD는 테슬라를 고객사로 확보할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 중국 광물 및 소재 협력사의 상당 물량을 자국 기업이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3사도 주요 고객사지만 일본과는 절대적 비중이 다르다. 오히려 반대로 이들 업체의 중국 구매비중은 80%에 육박한다. 중국이 ‘슈퍼을’인 셈이다. 가령 일본의 3대 제재 품목 중 하나인 불화수소 원료 무수불산은 중국 독점 제품이다. 중국이 옥죄면 우리나라 반도체에 직격탄이지만 우려는 덜 했다. 세계 최대 메모리 소비국인 중국의 제 눈 찌르기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가격 조정은 이미 국내 배터리 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중소형 기기에 투입되는 원통형 배터리 가격을 10% 내외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단기 계약을 맺는 제품 특성상 재룟값 상승분 반영이 빨랐다. 내년부터는 장기 계약 위주인 전기차용 대형 배터리 단가도 오르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미 CATL BYD 등에 밀린 배터리 가격경쟁력이 더욱 저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춰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남아시아, 남미 등 제2의 지역공략을 급선무로 꼽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칠레와 인도네시아, 포스코는 아르헨티나와 호주 등에서 원료 확보에 나선 상태다. 성일하이텍과 에코프로씨엔지 등은 폐배터리에서 광물을 추출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범정부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국과의 자원 외교, 대체 국가 발굴, 배터리 생태계 확장을 위한 규제 완화 등이 과제다. 일본 수출규제보다 강력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