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 이용자·합의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 마련돼야…국내 인터넷 규제 환경 지적 이어지기도

[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지난해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12)에서의 규칙 개정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인터넷 거버넌스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당시 회의에서 사이버보안과 스팸 이슈,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193개 회원국 가운데 89개국이 안건에 동의했다. 그런데 한국도 이 안건에 동의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를 두고 인터넷 검열의 근거가 마련됐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있고 반대로 문건에 인터넷이란 말이 포함돼 있지 않아 규제 개연성만 남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으며 여기에 정부와 전문가 뿐 아니라 최종 이용자(End User)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멀티 스테이크홀더)가 참여해 각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11일 서울 건국대학교 산학협동관에서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한국인터넷정보학회, 인터넷거버넌스오픈연구회, 망중립성이용자포럼이 주최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보라미 변호사(범무법인 나눔)는 지난해 WCIT 회의를 두고 “인터넷 거버넌스의 개념이 제대로 정리가 안 돼 있어 일어난 일”이라며 “인터넷 정책 결정에 누가 참여하고 그런 절차가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에 이용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세미나 취지를 밝혔다.

발제를 맡은 이동만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장)는 “국내는 1999년부터 인터넷 거버넌스를 논의해왔는데 시민사회의 참여는 적었다”며 “해외에서는 기업이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교수들이 대변해왔다”고 그간의 현황을 전했다.

이 교수는 또 “우리나라는 전문가와 정부를 중심으로 논의에 참여를 해왔는데 멀티 스케이크홀더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통신사들도 전화 쪽에 치중하면서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미국회사들은 이쪽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 중심의 톱다운 방식이 아닌 이용자 의견을 수렴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에 합의가 중심이 되는 의사결정 체계를 강조했다.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도 그가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위해 갖춰야 할 키워드로 꼽은 부분이다.

뒤이어 발표에 나선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도 이 교수가 강조한 의사결정 체계에 동의했다.

전 이사는 “현재 인터넷 거버넌스가 제도화 과정에 있다”면서 “정부가 결정하는 되는 것이라는 통념이 있는데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인터넷 주소체계를 미국이 독점해 움직이고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국제도메인관리기구(ICANN)가 미국 상무부와 계약 관계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앞서 이 교수도 지적했다. 인터넷 루트서버를 어디에 둘지 최종 결정권을 사실상 미국 상무성이 쥐고 있어 인터넷 거버넌스가 사실상 미국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이 교수는 국제전기통신 표준화부문(ITU-T)을 언급하면서 “미국 중심의 ITU 구도를 어떻게 깨드리냐가 화두”라며 인터넷 거버넌스의 활발한 논의를 촉구했다.

또 전 이사는 국내 인터넷 거버넌스 얘기를 꺼냈다. 인터넷 규제 환경을 지적한 것이다.

전 이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4월 인터넷을 국가규제 영역으로 지정한 최초의 국가다. 그해 9월에는 인터넷전화까지 규제를 결정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CP(콘텐츠제공업자)가 망 사업자에게 구글을 쓰겠다하면 접속할 수 있게 서버배치를 피어링(무료로)하는데 네이버나 다음은 인터넷상호접속 고시에 근거해 매년 엄청난 돈을 망사업자에게 주고 있다. 정통부가 2004년 만든 고시”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전 이사는 WCIT 회의에서 러시아가 인터넷을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규정해 국가 관리의 영역으로 할 것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러시아가 인터넷을 텔레커뮤니케이션 카테고리에 넣자고 한 것보다 한국의 인터넷 규제환경이 열악하다”면서 “러시아의 제안이 통과됐어도 우리나라 환경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거듭 국내 규제 현황을 지적했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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