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 시행령은 가상자산 업계가 지난 8개월 간 기다려온 존재였다. 개정안 자체는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가상자산사업자의 구체적 범위나 영업 신고 요건 등은 시행령에 명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초 공개된 시행령은 ‘맹탕’이었다. 실명계좌 개시 기준 때문이다. 가상자산사업자, 특히 거래소는 원화 입출금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좌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에 그동안 실명계좌가 없던 거래소들은 시행령에 명시될 기준만 기다렸다.

모습을 드러낸 시행령에는 실명계좌 개시 기준이 여러 개 담겨 있었으나, 이를 종합하면 결국 ‘은행이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금세탁 위험을 ‘알아서’ 평가한 뒤 실명계좌를 터주라는 것. 특금법 이전과 바뀐 게 없었다. 가상자산사업자의 운명을 사실상 은행이 판단하라는 것이어서 업계의 불만이 쏟아졌다.

지난 1일 온라인 생중계로 열린 특금법 시행령 공청회에서도 실명계좌에 관한 지적이 여러 번 등장했다. 업계 대표로 참석한 황순호 두나무 대외협력팀장은 “실명계좌 개시 기준이 구체화됐으면 했는데, 은행이 원래 부담하던 의무를 재확인한 것이면 중복규정으로서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만약 계좌 개시를 거절당한다면 거절 이유라도 알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채팅창에서도 이 같은 비판이 쏟아지자 ‘실명계좌 개시 기준을 법규명령 형태로 정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소극적이었다. 전요섭 FIU 기획행정실장은 “계좌 개시에 대해선 국제 기준으로도 나와있는 게 없다”며 “은행 간 평가방법에 차이가 있는데, 정부가 방법까지 정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FIU 자금세탁방지 업무규정에 위험 평가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이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상자산사업자의 실명계좌 개시 기준을 굳이 따로 정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은행도 소극적이었다. 은행 측 입장을 대변한 정지은 SC제일은행 상무는 “가상자산 거래는 자금의 원천, 거래 적정성 파악에 한계가 있어 모니터링이 어렵다”며 가상자산사업자에게 계좌를 터줌으로써 부담하는 리스크가 크다고 설명했다.

결국 남은 건 '입장 차'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운명을 가르는 일인데, 누군가에게는 ‘굳이 해야하는지 모르겠는’ 일이 됐다.

정부는 굳이 규정을 또 마련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고, 은행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계좌를 터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가상자산 관련 기업과 그 기업의 직원들은 이 ‘굳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저울이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청회는 말그대로 ‘듣는 자리’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못했다. 어려움을 말했음에도 듣지 않은 채, 미루다 미루다 끝난 공청회가 아쉬운 이유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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