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할 때 거래소 측에 지불하는 돈, 일명 ‘상장피(fee)’가 있다는 게 알려진 건 꽤 오래 전이다. 

업계 내에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동안 블록체인 산업을 취재하면서 상장피로만 수억원을 썼다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만났고, 프로젝트 관계자로부터 특정 거래소의 상장피가 얼마인지 알고 있냐는 질문도 받아봤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상장피를 받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거래소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거래소 홈페이지의 상장 안내 글에 “상장피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한 곳들만 있을 뿐이며, 대부분 상장피 없이 자체 심사기준에 맞춰 상장한다는 입장이다. 상장피를 냈다는 프로젝트가 있어 해당 거래소에 문의해보면, “받지 않는게 원칙”이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거래소들이 이런 공식 입장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놓고 상장피를 받지는 않지만 ‘상장피 비슷한’ 돈을 받는 문화가 업계 내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를 상장하고 싶어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입장에선 그 돈이 상장피나 마찬가지이므로, 업계 내엔 상장피가 존재한다는 얘기가 퍼지게 됐다.

일반적으로 거래소들은 ‘마케팅비’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신규 상장을 홍보하고 상장 이벤트 등을 진행하는 데 비용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비용을 부담하는 건 블록체인 프로젝트 쪽이지만, 프로젝트들은 마케팅비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힘들다. 사실상 이런 마케팅비가 ‘상장할 때 드는 돈’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입장에선 상장피를 낸 셈이다.

‘디파짓(보증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는 거래소들도 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상장하려는 암호화폐가 일정 수준 이상의 거래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거래소 측에 약속한다. 거래량을 꾸준히 유지하면 디파짓을 돌려주는 거래소도 있지만, 아닌 곳도 있다. 만약 거래량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디파짓도 받을 수 없다. 이 디파짓 역시 프로젝트 입장에선 상장피가 된다.

문제는 이 ‘상장피인 듯한’ 돈 때문에 블록체인 업계의 신뢰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신규 상장된 암호화폐가 공정한 심사기준에 맞춰 상장된 암호화폐인지, 상장피를 많이 내서 상장된 암호화폐인지 알 수 없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거래소에 낸 디파짓을 돌려받기 위해 일명 ‘마켓메이킹’이라 불리는 자전거래를 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 피해는 투자자 몫이고, 역시 업계의 신뢰도는 하락하게 된다.

업계 내에서도 불신이 생긴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별로 인지도나 기술력에 따라 거래소에 내는 금액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공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가 프로젝트와의 협의 없이 암호화폐를 상장하는 ‘도둑 상장’ 논란이 일 때마다 상장피 얘기가 나오면서 업게 종사자들 간 불신이 더 커진 적도 있다. 거래소가 자체 심사기준에 따라 상장하는 것은 블록체인 업계의 기반인 ‘탈중앙화’에 부합하는 일이지만, 평소에는 상장피를 받던 거래소가 갑자기 탈중앙화를 추구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제가 많은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암호화폐가 아직 ‘검은 돈’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업계 내부에서부터 투명하지 않은 돈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 밝힐 수 없는 돈이 오고 갈수록 암호화폐 업계의 정보 불균형은 심해지고, 투자자들로부터 얻어야 할 신뢰도는 하락한다. 신뢰도가 떨어질수록 제도권 진입은 멀어지고 블록체인 산업은 동력을 잃는다.

아직 암호화폐 상장 기준에 관한 국내 법은 없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규제하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내년 3월부터 시행되지만 역시 상장 기준에 관한 내용은 없다. 법이 없을 땐 업계가 스스로 바람직한 관행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는 그 돈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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