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악성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을까. 대학생들이 수강신청 때 애용하는 매크로는 악성 프로그램일까. 개인이 인터넷 게시물을 편하게 올리기 위해 쓰는 매크로도 악성 프로그램으로 봐야 할까.

기존엔 매크로를 편의상 쓰는 단순 프로그램으로 보는 국민 법감정과 판결 간의 간극이 존재했다. 사정기관에선 매크로를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프로그램으로 보는 인식이 팽배했고 법원 판결 역시 그렇게 나오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깨뜨린 대법원 판결<2017도16520>이 지난해 12월12일 나왔다. 일반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판결에 따라 매크로를 악성 프로그램으로 보는 사정기관에 더욱 힘을 싣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대학생 등 일반이 자주 쓰는 단순 자동화 프로그램까지 처벌 범위가 확대될 수 있는 ‘매크로 암흑기’의 시작이냐 새로운 법감정의 계기를 마련하느냐 기로에서 이 사람의 변호가 결정적인 방향타 역할을 했다.

김경환 민후 대표변호사

◆“웬만하면 다 기소” 분위기 속 법리 다툼…결국 승소=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을 이끈 김경환 민후 대표변호사<사진>를 최근 서울 역삼동 로펌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경환 변호사는 “경찰 검찰에 갔더니 자동화 프로그램이 악성 프로그램으로 바뀌어 처벌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며 “웬만하면 다 기소하고 정통망법의 악성 프로그램으로 본다”고 현황을 전했다.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8조 제2항엔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전달 또는 유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과 관련해선 보통 ‘운용 방해’로 기소가 되고 처벌을 받는다. 몇백명이 고소당하고 수십명이 기소되는 사례가 빈번한 가운데 한 매크로 프로그램 제작자가 법리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고 김경환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

사건의 쟁점은 ▲포털사이트에 게시글이나 댓글을 대량으로 등록해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의 개발 및 유포가 정통망법 제48조 제2항에 해당하는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하는지와 ▲매크로 프로그램이 정보통신망(포털 서버) 기능 수행에 방해가 된다거나 서버가 다운되는 등의 장애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었다.

1심에선 검찰 주장이 인용돼 피고인의 혐의가 인정됐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필요 이상의 부하발생이 운용 방해에 포함된다고 보아 이 사건 프로그램들을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한다고 보게 된다면 이는 형벌 규정의 구성요건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반한다. 그렇다면 피고인 이 씨의 항소는 이유가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검찰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기각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판결은 매크로 프로그램의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것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는 당초 검사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를 가정해 “카페에 자기가 올린 게시물과 댓글을 한 번에 삭제해주는 프로그램도 걸릴 수 있다”며 “대학생도 다 걸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매크로 전문가’ 헌법소원도 제기=김 변호사는 지난 6년 동안 사건을 맡아 대법원 판결까지 이끌면서 이제는 매크로 전문가가 됐다.

그는 정통망법 제48조 제2항에 명시된 ‘운용 방해’ 문구에 대해 “애매하니까 매크로도 잡게 되고 자동화 프로그램을 다 잡게 되는 문제가 있다”며 “처벌사례가 많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양쪽으로 하다가 대법원 판결이 먼저 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판결의 결정적 계기는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포털 서버에 부하가 걸려 다운(정지)됐는지 명확한 증거 제출’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김 변호사는 “운용 방해를 축소해서 엄격하게 봤고 법원도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법무법인 민후는 540만건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인터파크 해킹사건과 관련 방송통신위원회를 대리해 처분의 적법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야놀자를 대리해 여기어때(위드이노베이션)를 고소하고 기소처분을 받아내기도 했다. 현재 15명의 변호사와 3명의 변리사가 지식재산, IT신기술, 기업법, 금융증권, 형사공정거래 등 분야에서 전문 법률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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